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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기부

"We Start는 우리 가족에게 안식처이자 힘"

"We Start는 우리 가족에게 안식처이자 힘"

경기도 구리에 사는 시우(3살)어머니가 발달 및 지능 지체 등 복합 장애 아이를
고통속에서 키우다, We Start 구리마을(센터)을 만나 희망을 손에 쥐게된 이야기를 직접 썼습니다.

#이 글은 We Start 운동본부 2012년 우수 공모전 '감동 사연'부분 대상을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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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기도는 길~고, 한가지입니다

예정일을 2주 넘기고도 세상으로 나올 신호를 보내지 않아 유도분만을 시도한 2010년 1월 6일은 우리가족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날입니다.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의 설렘은 각별하고 기쁨은 충만하여 출산의 고통도 심하게 느끼지 않고 있을 때 딸아이는 벌써 나의 품에 안겼습니다.

환희의 순간도 잠시….
“오~ 하느님, 이건 꿈이지요?”라며 현재 상황이 악몽이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지만 꿈은 깨어나지 않고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딸아이는 2.3kg의 미숙아로 입천장에 구멍이 뚫린 심한 구순구개열, 신우, 요관 기형을 갖고 태어났으나 외형적인 기형은 시작에 불과 하였습니다. 

출생 후 일주일경 부터 잦은 발작성 경련으로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하니, 4번 염색체 이상으로 발달장애, 지적능력 저하 및 보행도 쉽지 않을것 이라는 진단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현실을 인정하고 고군분투 한지 생 후 8개월째 구순열 1차수술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쿵- 10톤짜리 망치 하나가 나와 딸아이에게 날아 왔습니다.
아빠는 딸아이를 이미 마음에서 떠나 보내고, 시설로 보내자는 얘기를 했습니다.

설득도 애원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고, 엄마인 내가 4살부터 혼자 자라서 그 서러움과 아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장애가 있는 딸을 시설로 떠나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가슴을 저미는 아픔속에서 남편에게 친부포기각서를 써달라고 요구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침묵의 동거”가 시작된 그날,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마셨던 맥주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소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구리 시청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아빠가 시설로 보낼려고 하는 우리 딸아이를 좀 도와 주세요”라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답글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3일째 되던 날. 시청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We Start 센터 보건담당자 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리고 선생님께서 집에 방문하셨고 내 인생에도 한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집에 오실때마다 마음속 응어리들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왜 그렇게 눈물은 많이 나오는지….그리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리는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함께 지켜 보며, 같이 잘 키워 보자고 하시더군요. 그 말 한마디는 천군만마를 얻은것 같은 힘이 되었습니다.

반 지하에 생활을 해서인지 폐렴에 잘 걸리는 큰아들을 위해 영양제, 동병하치, 각종 예방접종을 챙겨주시고, 변비에 시달리는 딸아이를 위해 유산균제, 병원비 후원연계, 남편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가족사진 촬영 및 외식, 가족 축제 초대해 주셨습니다.

보육선생님은 큰아이를 위해서 어린이집에 일주일에 한번 오셔서 좋은 책도 읽어주시고, 재미있는 요리활동과 게임도 해주셨습니다. 

우리부부는 서로의 아픔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투덜투덜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런 시간들을 통해 “좋은, 엄마,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건히 하게 되었습니다.


We Start는 그렇게 우리가족 안으로 들어와 “ 수호천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쌀, 빵, 고기, 김치, 전기장판 등의 후원품은 우리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고 세상의 관심이 우리에게 전해져오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였습니다.

We Start센터는 우리가족에겐 안식처이고, 힘이며, 세상을 살아갈 희망입니다.

올해는 이사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위스타트 선생님들을 보지 못할까봐 수택동을 벗어나지 않을 계획을 세워 봅니다.

지난 12월에 만3세가 되는 우리 공주님, 키도 많이 크고 몸무게도 늘었지만, 여전히 위에 호스를 삽입한 채 우유를 먹고, 목에 구멍을 뚫은 채 숨쉬기를 하고, 엄마, 아빠를 못 알아보지만, 눈맞춤도 되지 않는 녹내장이 있는 눈동자는 엄마인 나를 따라 오는것 같습니다. 

때로는 화났다는 표현도 목에 삽입한 기구를 통해서 엄마인 나에게만 알려 주기도 합니다.

큰아이는 동생에게 가끔 장난도 쳐주고, 잠깐씩 돌보아 주며, 아빠는 “시은아!, 예쁜 우리딸”하고 반응 없는 딸 아이의 이름도 불러주며, 목에 있는 구멍으로 가래도 뽑아주고 이마에 뽀뽀도 해줍니다.

그래서 아~주 아~주 가끔씩은 영화보기를 싫어하는 아빠에게 딸아이를 맡겨 놓고 큰 아들과 함께 영화관에도 다녀옵니다.

지금 우리가족은 행복하고 시우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 합니다.
이 모든 변화는 We Start 구리마을 선생님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늘도 엄마의 기도는 길고도 늘 한가지입니다.
“딸아이가 눈부신 햇살 아래로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라고…

#(영상)혜민스님과 함께 만드는 아동의 미래
  -스님은 We Start 운동본부 나눔대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