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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5가지 축, 한국의 디지털(소프트웨어)위기 등을 강의와 칼럼으로 전파합니다. Smart Work( 디지털 생산성 도구)로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자고 설파합니다.김일 4차혁명트렌드랩 소장 <강의 문의>010-5285-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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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22:56 성공 스타트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해일, 한국은 방시혁이란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뉴비즈 리더>를 얻었다■

■이 시대의 <영웅 방시혁의 리더십>을 5가지로 정리해본다■

(김일 4차혁명트렌드랩 소장/ 내일신문과 SNS에 쓰고있는 정기 칼럼입니다)

정부는 이번 한글날, 한국어를 세계에 유행시킨 공로로 방탄에게 ●화관문화훈장●을 수여. 우와!

<2018년 10월 기준 통계>

가수 싸이의 경제 가치가 약 1조원으로 평가됐는데 방탄(BTS)은 이미 ‘2조5천억원’ 가치를 넘어 광폭 성장중.

2017 유튜브 조회수도 56억회로 세계 1위.

가요계의 천재 작곡가였던 방시혁(46)은
2005년 작은 방 하나의 소 기획사 '빅엔터테인먼트' 설립해
2013년 7인조 방탄 데뷔시킨 뒤, 5년만에 세계최고 보이그룹으로 키워냈다.


그는 BTS의 음악 철학, 예술적 재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역량까지 모든 것을 꺼내 보석을 만든 인물.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그는 "아티스트는 누군가 창조하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의 예술/비즈 역량을 말해준다.

“방탄조끼처럼 10대에 대한 모든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겠다”는 인문학적 슬로건을 앞세운 7명의 소년(RM·슈가·진·제이홉·지민·뷔·정국).

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 Bulletproof Boys: BTS)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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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5대 리더십■

●<1> 자신이 지시, 기획하지않고 7명의 소년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풀어내게 유도했다●
춤 실력, 좋은 성품과 겸손만 요청했다.

리더 RM 등 7명은 젊은이들의 고뇌를 자신의 삶 이야기(시골 출신, 실패, 방황 등)에서 추려내 가사로 표현, 세계 청소년들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또래 목소리를 대변한 것.

무명 시절 이들도 숱한 실패/언론의 외면을 겪었고 그게 오늘의 자양분이 됐다.

작곡, 안무도 상당수 자력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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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지털 감각도 있는 방시혁은 7명에게 소셜미디어(SNS)에서 소소하고 진솔하고 부끄러운 일상들(예; 라면 먹기, 합숙소 생활, 연습 장면)을
글과 사진, 1인 미디어 영상으로 올려 세상과 소통하도록 권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매일 활용, 영어도 병기)

그의 지침은 "팬과 인간적 소통하며 선한 영향력 가진 아티스트가 되라"는 것.

무명시절 자신들을 알릴 방법이 없었던 7명은 이 작업에 적극적으로 매일 매달렸고 처음 10여명 팬의 메아리가 이제 세계 10억명 이상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홍보 비용 거의 제로/ 음악적 서사의 힘)

'Army'라고 이름 붙여진 글로벌 팬그룹은 SNS 소통 과정(좋아요, 댓글, 내용 전파, 엄청난 리액션 영상)을 통해 "내가 키운 아이돌"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됐다.

(이들의 홍보 활동은 어떤 고액 광고도 못따라가는 상황)

세계 팬들은 이미 그들을 아주 친숙한 친구(함께 라면을 먹었던~)로 여기고 크나큰 위안을 얻으니 열광한다.


방탄이 주는 교훈은 "세상과 <SNS로 연결>하라. 그러면 신세계가 열린다"라는 것.

<그래픽: 중앙일보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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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인문학적 영상과 가사로 스토리텔링했다(한국인의 강점)●

스토리텔링 형식의 남다른 뮤직비디오도 BTS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끄는 이유로 꼽힌다.
뮤직비디오에는 세계 청소년들의 여러 고민들이 담겨 있다.

가사도 사랑이나 소모적인 게 아니라 청춘, 자유, 인생, 시스템에 대한 저항 같은 시대정신을 담아냈다.

좌절하고있는 글로벌 청년세대에 큰 공감의 물결이 일었다.

'무일푼 촌놈' 7명이 Great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스토리가 담겨있어 열광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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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의 철학●

방시혁은 "K-Pop 고유가치 지키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수십년의 K-Pop 축적을 잘 활용했고 해외시장도 의도적 공략을 안했다.

한국어 가사를 고집하고, 외국인 멤버를 영입하지 않았다.
(미국에 진출한 아시아 뮤지션에 그치지 않으려했다고)

그 덕에 이제 세계에는 한글과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4억명(필자 추정)을 넘어서는 ●단군 이래 최고의 한국어 르네상스●가 왔다.

아이돌들의 콘서트마다 수십개국 외국인들이 한국어 떼창을 한다.
(수만개 한글 팻말 들고)

이제 어느 나라 어느 골목을 가도 한국어가 통하지않는가?
한국인이라면 스타 대접을 받지않는가?

그 가운데 하나의 양념도 있다.

BTS의 음악이 1990년대 정통 미국 힙합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해외 팬들은 “방탄처럼 영어 랩을 잘 구사하는 K-Pop 아이돌은 드물다”고 말한다.

방탄은 세계적 음악 트렌드도 치열하게 공부한다.

게다가 방탄의 '칼군무'(엄청난 연습량)는 세계 어느 가수도 흉내못내는 한국인만의 <흥의 공화국>DNA가 녹아있다.

이 춤을 세계인이 따라하며 고민을 잊고 흥겨워한다.
(어느 종교/정치가/기업가/부모도 못해준 일)

방시혁은 이를 "춤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고 표현.
'보는 음악' '탈언어적 음악' '직관적 음악'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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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방탄은 글로벌 공익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해 존경이 쏟아져●

글로벌 공익단체인 유니세프의 후원자가 돼, 지난 5월 스타워즈와 세계 빈곤 아동 위한 모금을 시작했는데

목표 1백만 달러(약 11억원)를 '아미' 팬클럽의 기부 돌진 덕에 이틀만에 달성하는 쾌거 기록.
('내가 만든 아이돌'의 해일/ 아이돌 나눔 바이러스의 위력)

9월 24일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새로운 청소년 어젠다 발진 행사에서
방탄이 7분 영어 연설에 나서 세계 청소년들에게 "나를 사랑하라. 나만의 목소리를 내라"고 포효해
해당 영상이 글로벌 히트.

--------------------------- *7분 영상(한글 자막) 

https://youtu.be/AC_Rioe9Irw 

*방탄소년단 유엔연설 전문
http://bit.ly/2OOKW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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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미디어들은 “International Superstar란 말로도 부족한 팀”이라고 찬양한다.

빅엔터테인먼트는 이제 영업이익이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사를 추월. (이제 돈은 제발로 온다)

방탄은 이미 ●지구촌의 철학적 리더●다.

오래전부터 '한민족이 지구인의 영적 리더가 된다'는 예언이 있어왔다. 그런 조짐이 아닌지?

최근 비핵화 협상도 '국제 평화'라는 테마에 한민족이 철학적으로 선도하는 모습이 아닌지?

●결론: 인문학적, 감성적 스토리텔링이 비즈니스의 핵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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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방시혁 인터뷰
http://bit.ly/2RwyutT

BTS 탄생 시킨 사람들
http://bit.ly/2Rzaiaw


[관련 칼럼]

■한국, 감성산업으로 세계 제패하자■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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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진영 2018.10.18 17:03 신고  Addr Edit/Del Reply

    방시혁님의 프로듀스와 아티스트의 열정과 노력이 오늘 날과 같은 좋은 시너지을 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멋지구요
    앞으로 더 새롭고 큰 역사를 만들어 가시길 기대하며 응원하는 바입니다..BTS ❤️

2015.04.01 17:18 성공 스타트

[세종의 창조습관으로 10년 후를 대비하라]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의 삼성그룹 사장단 특강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소중한 강의~~~

세종조에는 왜 유독 창의적 인재가 많았을까?
과학으로는 이천과 장영실, 학문으로는 성삼문 같은 집현전 학자들,
음악에는 박연, 관료로는 황희,
그리고 국방으로는 대마도와 여진족 정벌에 성공한 최윤덕과
6진을 개척한 김종서,

하늘은 이 시대에만 창의적 인재를 쏟아 부어 주신 것일까? 

이런 의문은 조직의 창의성을 도대체 무엇이 결정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결론은 리더의 창조 습관에 있다.
리더가 나서서 창조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주위를 창의적이 되도록 하는 리더의 사고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종조에만 인재가 특별히 많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세종이라는 임금만의 창조 습관이 당시의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변모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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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리더의 창조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여기에 대답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반대로 질문을 해보자.

리더의 창조 습관은 어떤 경우에 사라지는가? 
바로 '박스(box) 사고'를 할 때다. 

우리는 누구나 라면 박스 같은 것을 머리에 하나씩 이고(걸치고) 산다.
그런데 이것은 투명하다.
그래서 마치 아무것도 머리에 걸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이것을 하나씩 
걸치고 있다. 

박스는 왜 생기는가?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 밖으로 나가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창의적인 사람은 바로 이 박스 밖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리더가 있으면 국가나 기업의 창의성은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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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박스 밖을 무슨 수로 보는가?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에 가장 능숙했던 사람이 바로 세종이다. 

1. <창조적 요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라.  

창조적 요동이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 같이 생각해 볼 것이 하나 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하는가? 

커피 믹스도 있고 컵도 있다. 그리고 뜨거운 물도 있다.
그런데 커피를 저을 막대나 스푼이 없다.
10명이면 8~9명이 커피 믹스 봉투로 저어서 먹는다. 

 

이때 세 종류 사람이 있다.
첫째,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절대 창의적일 수 없다.
두 번째 부류는 저어서 먹지만, 찝찝하게 생각한다. 창조에 2% 부족하다.
세 번째 사람이 있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다른 대안이 없을까 골몰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관찰한다는 것이다.
실제 커피 믹스 봉투로 저어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본다.
이제 그는 봉투를 안 써도 약간의 물을 넣고 컵을 돌려 커피를 섞은 뒤, 물을 더 넣으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만 창조적 요동을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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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종은 그토록 창의적인 리더가 되었는가?
'문제'를 보는 눈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왜 세종이 아닌 다른 왕들은 한글을 못 만들었을까? 

세종조 이전의 어느 왕도 우리말이 한자와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세종의 하루 일과는 특이했다.
오전 5시에 기상한 후 9시에서 11시까지 한 일이 있었다. 바로 윤대(輪對)다.
누군가와 돌아가면서 독대를 하는 거다. 

영의정 또는 우의정 같은 고위층과 독대한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 치면 사무관 이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경연을 했다.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자리다. 이때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나이 든 관료들과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을 동시에 참여시켰다. 

만날 "아니 되옵니다"만 외치는 고위 관료들과 달리 젊은 학자들은 세상을 어떻게 볼까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세종은 고위 관료와 젊은 학자 사이에 갭(gap)을 발견했다.
이게 바로 문제를 보는 눈이다. 

'갭=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녁 10시에서 12시에는 구언(求言)을 했다.
백성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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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세종은 지독히도 문제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왜일까? 

내 생각이, 그리고 당대에 통용되던 방법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진짜 문제를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세종 즉위 후 수년 동안 나라는 가뭄에 시달렸다.
보통의 왕 같으면 아마도 기우제를 지내 자신의 부덕을 고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의 처방은 달랐다.
문제의 근원은 중국의 역법(曆法)이 조선의 상황에 맞지 않으며 농사짓는 방법이 잘못된 데 있다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본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집현전 학자들에게 새로운 역법을 만들 것을 주문했고, 동래현 관청의 노비였던 장영실을 등용해 하늘을 관찰하는 천문 기구를 만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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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농사직설'이란 책을 짓게 했다. 

책 내용은 전국 베스트 농부들의 노하우를 정리한 것이다.
가뭄이 극성을 부리던 강원도를 그는 수시로 방문하면서 농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를테면 전라도 지역의 아무개가 농사를 기가 막히게 잘 짓는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모은 것이 우리 역사상 최고의 농업기술서인  '농사직설'이다. 

어떤 리더는 자신의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걸 무진장 싫어한다. 

항상 문제 '프리(free)'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박스 사고다.

창의성이란 문제를 보는 사고에서 시작한다. 창조적 요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없던 문제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문제를 싫어하는 박스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문제가 드러나면 야단부터 친다. 이런 기업에서는 구성원들이 문제를 숨긴다.
당연히 기업은 집단적인 박스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드러내 해결하는 대상이다.
이것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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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조적 다양성을 수용하라.  

세종의 두번째 '박스 사고 탈출법'은 반대 의견에 관대하기였다.
역사상 세종조만큼 반대를 많이 한 신하들이 득실거리던 때도 없었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부터 큰 것까지 그는 온통 반대를 이고 살았다.
그의 반대에 대한 관용은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글 반포 후 최만리가 반대했을 때는 도가 지나쳐 세종도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런데 죄를 묻는 방식이 귀엽다. 하루만 상징적으로 옥에 가두고, 다음 날 빼주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가 가끔 듣는 말 중에 "참 고약한 사람이야!"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세종조에 있었던 고약해(高若海)라는 신하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이후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세종은 "고약해 같은 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실록에 의하면 고약해의 반기를 드는 정도가 지나쳤다.
눈을 부라리며 세종을 노려보는 행동은 차라리 귀여운 것이었다고 한다. 

보란 듯이 휑하니 나가기도 했다.
그래도 세종은 그를 대사헌이라는 자리까지 올려주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 다른 신하들도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반대가 주는 다양성의 의미를 깊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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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조적 마찰을 활용하라. 

셋째 방법이 재미있다. 그는 회의를 하면 꼭 싸움을 붙였다.
창조적 마찰을 조장한 것이다.

사용한 방법은 '견광지(絹狂止)'였다. 

'견'은 '하지 말자'라는 뜻이 있다. 반대라는 것이다.
'광'은 '해보자'라는 뜻이 있다. 찬성이라는 말이다.
둘 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지'는 잠깐 쉬어 다시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경연에서 고위 관료들은 대체로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다. 

집현전 학자들은 "해 봅시다"라고 우겼다.
세종은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왜 안 된다고 하는지, 그리고 왜 해볼 만하다고 하는지, 그래서 이 둘을 통합할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했다. 

 

창의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할까?
구성원들이 창의적일수록 당연히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더의 창조 습관]이다.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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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1 21:53 나눔 기부

주은래(周恩来) 중국 초대총리의 6무(無)의 삶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월 8일은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주은래(周恩来)중국 초대 총리(27년 재임)의 기일(忌日)★이어서 중국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 푼의 저축이나 방 한칸도 소유하지 않았고, 욕심을 버리기위해서인듯 자식도 낳지 않았으며, 심지어 묘지도 만들지못하게한 신중국 제1의 총리였습니다.
1976년 사망.  


♥그는 청렴결백하여 툭 털면 먼지밖에 없으면서도, 중국과 중국인을 위하여 조심하며 죽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한,지금도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중국 인문학의 힘일까요?
한국에서도 이구동성으로 존중받는 리더는 언제 나올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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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무(無)의 삶을 살았지요. 
 
‘1無’는 죽은 뒤 유골조차 뿌려버리도록해, 무덤도 없다는 것입니다..  
 
‘2無’는 '중국인에게 가장 큰 불효는 무자식’이라고 하는데,자식을 낳지않고,
문화혁명기간 중 부모를 잃은 동지의 자녀들을 양자로 삼아 키웠지요.
그 중 리펑은 총리를 지냅니다.  

 
‘3無’는 27년간(1949~1976)이나 총리를 지냈지만 겸손하고 청렴하여 권력자로 행세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4無’는 누구와 한 번도 당파를 이루지 않아 ‘무당파 정치인’이었다는 것입니다. 
 
‘5無’는 고생스런 일은 도맡아하면서도 누구도 원망해 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6無’는 유언을 남기지않아 정치풍파를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를 만났던 인사들은 마치 공자(孔子)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고, 우아함과 높은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며 칭송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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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서방 세계를 감탄케한 그의 비범한 풍채와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를 보여준 대표 사진.
1954년 제네바회의 참석때 장면입니다.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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