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젊은 날] 등 시집 여러 권과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등 산문집 여러 권, 소설, 영화 대본 등을 펴낸 문학인 ------------ 어려서는 축구선수를 꿈꾸었고 청년기에는 영화감독을 선망했다지만, 문학이야말로 그의 평생에 걸친 애정과 헌신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을 몽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노래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으고 그걸로도 안 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 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그 어처구니없는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 놈의 짓인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 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찟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 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 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은 여보게 아예 그대 몸에 한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 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어
뿌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목지 몸짓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저 싸우는 현장의 장단 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비로소 한 춤꾼은 비로소 굽이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비록 저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껴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 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 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 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 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페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 위에 희대의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 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띠기에 인생을 걸어라// -------------
시집 소개 : [젊은 날] - 글쓴이 : 백기완 - 펴낸곳 : 노나메기
<젊은 날>은 1982년에 비매품으로 나온 뒤 1990년에 비로소 정식 출판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출판사 안팎 사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었지요.
<젊은 날>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통일운동으로 애쓰는 백기완씨를 도우려는 여러 손길(봉투)들이 일궈낸 값진 열매입니다. 고문후유증으로 애먹는 백기완씨에게 자기 몸을 보살피라며 건넨 봉투들을 그는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젊은 날>을 새로 펴내는데 모두 바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