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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윤봉길 의사의 가슴 찡한 유서들

윤봉길 의사(士)의 가슴 찡한 유서들

 


[중국 상해 홍구공원 윤봉길 의사 폭탄 거사 직후의 모습]  

 

[윤봉길의사가 두 아들에게 쓴 유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있고 뼈가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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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가 동포에게 쓴 유서]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나만 나 혼자만 잘먹고 잘살다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내가족의 미래보다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시인.

1932 4 29일 중국 상하이의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수통형 폭탄을 투척,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등 군 수뇌 다수를 살상시켜 일본제국주의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 왕의 생일잔치와 상하이 전승기념 축하식 자리였다.


이에 중국 장개석 주석은 “중국의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것을 한국의 한 의사가 능히 했으니 장하도다”며 감탄했다.

 

장 주석은 이 때부터 김구 선생을 극진히 모셨고 세계 열강회의에 가서
"한국은 독립투쟁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있으니 태평양전쟁이 끝나면 독립시켜야한다"고 주장해 열강들의 한국 독립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김구 선생과 윤 의사 아니었으면 한국은 8.15 해방후에도 식민지로 남아있을뻔 했던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 어록에서]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길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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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듬해 윤봉길 의사 생가를 방문한 백범 선생. 왼쪽부터 백범 김구, 윤의사 부친 윤황씨, 모친 김원상씨, 윤의사 부인 배용순씨, 윤의사 장남 윤종.


홍구공원 거사를 지휘한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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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은 이 분들께 너무 큰 빚을 지고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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