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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나눔
4차 산업혁명의 5가지 축, 한국의 디지털(소프트웨어)위기 등을 강의와 칼럼으로 전파합니다. Smart Work( 디지털 생산성 도구)로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자고 설파합니다.김일 4차혁명트렌드랩 소장 <강의 문의>010-5285-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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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6:04 SNS 영상 시대

■유관순 열사 [8호 감방의 노래] (Women’s march)가 100년 만에 되살아났다■

●한국일보가 발굴한 당시 가사에 싱어송라이터 안예은(K팝스타5 출신)이 음원 제작●

한국일보 연중기획 ‘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 프로젝트의 일환,

한국일보는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 여성 애국지사 8명의 후손 2명으로부터 당시 가사와 멜로디를 발굴해 안예은씨에게 제작을 의뢰했다.


‘대한이 살았다/대한이 살았다’라는 3ㆍ1 독립항쟁의 결기를 보여주는 가사 등이 인상적.

[3분 뮤직비디오] https://youtu.be/ITDlWk_8QQ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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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상영중.

(일부러 흑백 톤으로 만든 영화)

(3.1절 연휴기간 1위)

소개 및 예고편 영상

http://bit.ly/2SDEJf2

*영화에도 나오지만 님의 사인이 (가혹행위에 의한)"장 파열 및 자궁 파열상"이라는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게다가 출소 2일전 감옥에서 사망 ㅠㅠ

#유관순 #유관순영화 #삼일절 #8호감방 #안예은 #항거 #항일운동 #8호감방노래 #Remember_3_1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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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21:48 집단지성

■3.1 독립항쟁 100년을 맞아 돌아보는 한민족의 의병(義兵)DNA■

●의병은 한국인의 국혼(國魂)●

by 김일 4차혁명트렌드랩 소장(전 중앙일보 디지털뉴스 국장)

-내일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3.1
독립항쟁(1919) 및 임시정부 수립 100년 행사들이 많은 감회를 줍니다

항일 투쟁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보여준 결기는 당시 식민지들 가운데 비교할 나라가 없다고 세계의 지성/언론들이 평가합니다

3.1 만세운동만 해도 수백만명의 평화 시위 민초들이 일본제국주의 경찰의 총격을 받으면서도 줄기차게 전국에서 궐기하는 경이로움을 보였습니다.

일제(日帝)측이 받은 충격도 컸다고 합니다. 칼든 무사들의 오랜 공포 통치로, 역사상 민란이 없었던 일본은 크게 놀랐습니다

여성의 참여가 더 많은 것도 일본측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일본 여성들은 오랜 피압박으로 지금도 큰 목소리를 못내고 집에서도 순종적인 삶을 산다고 산다고 합니다

한국엔 여성단체가 수만개지만 일본에는 현재도 여성만의 단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사회적 주체로서의 삶이 어려운 구조.

한국 여성들은 일제 경찰의 수사 및 투옥과정에서 많은 성적 학대를 받았지만 유관순 열사처럼 당당함을 잃지않았습니다

그후 일본 정계에서는 3.1운동을 겪을 것이냐는 얘기가 종종 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의 일제 수뇌부 처단 쾌거에 더 놀란 건 당시 중국 지도부였습니다.

장개석 총통은 당시 “100만 중국 군대가 못한 일을 조선 청년들이 단신으로 했으니 장하고 장하다며 부러워했지요

실제 당시 중국 군대는 잔악한 일본군의 침략 앞에 용감하지 못했습니다.
장 총통은 이 경험 탓에 후에 국제회의에서 한민족은 자주국가를 향한 투지가 강하다며 독립 승인을 주창했다고 합니다.

3.1
항쟁은 중국 5.4운동을 촉발하는 등 세계적으로 민족자결운동에 불을 당긴 것으로 학계가 인정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한민족은 남다른 결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발적인
3.1 항쟁도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선진적 의식을 가진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이같은 기개는 한국사 고비때마다 민초들이 농기구라도 들고 의병(義兵)을 거국적으로 일으켜 외적에 맞서 국가를 살리려고 했던 전통에 맞닿아 있습니다

의병은 한국인의 국혼(國魂)입니다.

[말모이]에서 한글과 우리 말 살리기에 목숨 건 여러 선조들의 모습은, 우리 역사상 의병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성들의 국가 수호를 위한 자발적 몸 던지기는 한민족에게만 있는 역사 깊은 의병정신 때문

고조선 멸망 등 국란 때마다 자발적 의병이 일어나 크게 기여해온 민족은 우리뿐이지요

고조선 멸망 때도 왕이 암살되자 민초들이 들불처럼 전투에 가담해 세계 최강 한나라에 1년간 항전했습니다. 멸망후에도 계속 저항해 결국 한나라를 쫓아냅니다.

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여서 생존본능과 민족적 자존감이 강렬했던 때문으로 유추합니다

의병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자위군(自衛軍). 

의병의 전통은 이미 고조선,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특히 조선 말기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지요

<구한말 서구 언론에 보도된 의병의 모습> 

구한말 역사학자 박은식(朴殷植)선생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높게 평가했습니다.(저서인 한국독립운동지혈사, 血史)

, 우리 민족은 역대 항중·항몽·항청·항일의 투쟁 속에서 정신력/무력이 강한 국민성을 갖게되었고, 이 때문에 어느 침략자든 굴복하여 동화되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의병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의병과 한말의 의병, 항일 독립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전국적 대규모 촛불 시위도 이런 주인의식과 결기의 표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피가 뜨거운 민족이라고 하겠습니다

수출 입국, 한강의 경제 기적도 공동체 내에서 각자 자기 역할을 하는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개념이 없던 고조선때부터 민주적 의식과 활동을 보여온 우리 민족의 대단한 장점과 헌신성이 직

접민주주의 시대와 포용국가 시대에 활발하게 꽃펴, 세계의 공동체 문화를 선도하는 민족으로 발돋움하기를 기원합니다


[임진왜란 의병 봉기 지도]

[병자호란 의병 봉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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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내용]

민족문화대백과 '의병' 편

http://bit.ly/2AXvFvv

[2분 영상] 외국인이 한국 의병을 극찬하는 이유

https://youtu.be/HvBwnu9aPrU



■장개석 중국 대원수의 요청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이 수용해
1943년 11월 [한국 독립]을 명시한 카이로 선언.

"한국민이 일본의 노예적 상태에 있음을 상기하면서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임을 굳게 다짐한다"

당시 많은 식민지 중 한국만 언급했다는 것은, 장개석 대원수의 한국인들 독립투쟁에 대한 감명이 그만큼 컸음을 말해줍니다.


[관련 영상과 글]

영상 ■설민석의 영화 [말모이]해설강의■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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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21:29 집단지성

윤봉길 의사(士)의 가슴 찡한 유서들

 


[중국 상해 홍구공원 윤봉길 의사 폭탄 거사 직후의 모습]  

 

[윤봉길의사가 두 아들에게 쓴 유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있고 뼈가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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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가 동포에게 쓴 유서]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나만 나 혼자만 잘먹고 잘살다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내가족의 미래보다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시인.

1932 4 29일 중국 상하이의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수통형 폭탄을 투척,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등 군 수뇌 다수를 살상시켜 일본제국주의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 왕의 생일잔치와 상하이 전승기념 축하식 자리였다.


이에 중국 장개석 주석은 “중국의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것을 한국의 한 의사가 능히 했으니 장하도다”며 감탄했다.

 

장 주석은 이 때부터 김구 선생을 극진히 모셨고 세계 열강회의에 가서
"한국은 독립투쟁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있으니 태평양전쟁이 끝나면 독립시켜야한다"고 주장해 열강들의 한국 독립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김구 선생과 윤 의사 아니었으면 한국은 8.15 해방후에도 식민지로 남아있을뻔 했던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 어록에서]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길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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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듬해 윤봉길 의사 생가를 방문한 백범 선생. 왼쪽부터 백범 김구, 윤의사 부친 윤황씨, 모친 김원상씨, 윤의사 부인 배용순씨, 윤의사 장남 윤종.


홍구공원 거사를 지휘한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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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은 이 분들께 너무 큰 빚을 지고있지요.



[관련 글]

■숫자로 본 3.1 민족항쟁■


<청년 역사단체 반크가 만든 3.1운동 유적지 지도>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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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20 16:40  Addr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5.03.03 22:19 집단지성
96주년 3.1절을 지나며 제안합니다.

★ 무려 7,509명이 비무장 상태에서 잔인하게 학살(일제 집계)되고, 
15,961명이 부상당한 사태를 '3.1만세운동'으로 위축시켜 부르는 것은 
이제 시정되어야합니다.
 ★

★ '3.1 민족항쟁'이 마땅한 이름아닌가요? ★

3.1 항쟁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민족 독립운동을 촉발시킨 세계사적 의미도
있지요.
이름 없는 민초들이 주체가 되었다는 점도 세계사적 의미가 있고요.

1919년 5월까지 지속된 1,542회의 시위에 참가자수 2백2만3천여명(인구는 1,678만명) ,체포 52,770명, 불탄 교회 47, 불탄 학교 2, 불탄 민가 715곳에 이릅니다.

감옥에 갇힌 5만여명은 고문과 성폭행 등 잔인한 가혹행위로 고통받았지요.

젊은 세대들에게도 전수해주어야할 수치들입니다.

오늘의 우리 삶이 조선시대 의병과 3.1운동 순국자 분들께 크게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폭력'을 천명했지만 학살로 돌아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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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항쟁은 체계적 저항도 유발시킵니다.

한달 뒤인 4월 11일. 민족 대표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 도의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고, 
이틀 뒤인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합니다.

 [부산의 태극기 할아버지가 3.1절날 부산에서 벌인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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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노래(정인보 작사/박태현 작곡)의 가사입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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