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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판사 사찰에 대한 판사 4명의 비판 성명■(전문)

■판사 사찰에 대한 판사 4명의 비판 성명■(전문)

"검찰의 재판부 뒷조사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대 범죄행위다"
"판사는 바보입니까" "재판의 독립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다"

"사찰 혐의 문건 압수수색을 진행한 대검 감찰부를 상대로 수뇌부가 역조사에 착수한 것은 독재정권·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기시감이 든다"

 

대검찰청이 판사들의 재판 진행방식과 성향 등을 분석한 문건을 수사부서에 공유한 사건과 관련해, 판사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윤석렬 검찰총장이 판사 성향 분석 문서 작성을 지시했고 공판부도 아닌 수사 부서(대검 반부패수사부)에 전달하는 방식마저 위법적이라 판사 불법 사찰 논란이 일고있다.(판사를 수사하라는 뜻을 넌지시 내포)

 

이에 부장판사급 중견 판사들이 검찰을 비판하며 7일(내일)의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정식안건으로 올려 진상 규명 및 조치를 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중 전문이 입수된 판사 4명의 성명을 소개합니다. 육성을 느껴보세요.

 

1)이봉수 창원지법 부장판사 "민감한 정보 함부로 처리하면 중대 범죄"

판사에 관한 사적인 정보수집은 부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할 의도가 아니라면 무의미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감한 정보는 법령에 특별한 근거가 없으면 함부로 처리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대 범죄행위다.

대검이라는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 보관할 수 있다는 법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지금까지 관행처럼 재판부 판사 개인정보를 수집해왔다면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마땅하다


재판부 정보수집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지만,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공판검사여야 하고 정보수집 범위도 공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로 제한돼야 한다.

재판장의 종교·출신 학교·출신 지역·취미·특정 연구회 가입 여부 등 사적인 정보는 공소 유지와 관련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사용할 생각으로 판사 개인정보를 수집했고, 앞으로도 수집하겠다는 것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형사절차에서 이런 사적 정보들을 참고했을 때와 참고하지 않을 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언론도 사상, 신념 등을 이유로 법관과 재판을 예단하거나 결과를 비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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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 '판사는 바보입니까'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판사)

 

'공소 유지 참고자료' 명목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을 맡은 판사의 개인정보와 성향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대검 측 해명은 참 어이가 없다.

얼마나 공소 유지에 자신이 없었으면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판사의 무의식과 생활 습관인 성향을 이용해 유죄 판결을 받으려고 했을까?

재판부 성향을 이용해 유죄 판결을 만들어내겠다니, 그것은 재판부를 조종하겠다, 재판부 머리 위에 있겠다는 말과 같다.

 

누구든지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려고 시도해서는 절대 안 된다.

법원행정처는 검찰이 소위 사법농단 관련 수사에서 취득한 정보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조사해 법관대표회의에 보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전국법관대표회의 안건으로 올려 논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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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 

소추기관인 검찰이 이를 심판하는 기관인 법관을 사찰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검찰 수뇌부는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이 당당하니 사법부의 비판과 검찰에 대한 조치, 제도 보완 등이 요청됩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간절히 호소합니다!!!

사법부 개혁과제가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조용하던 법원 주변이 어수선하기에 오랜만에 코트넷(법원 게시판)에 오른 글을 보러 들어갔다가 실망을 금할 수 없어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중요사건을 다루는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재판부 법관들에 관하여, 판결 성향, 소송지휘 방식, 세평뿐만 아니라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취미 등 극히 개인적인 사항까지 수집한 보고서를 검찰총장에게 보고하고, 검찰총장은 이를 공판부도 아닌 대검 반부패수사부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찰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충분한 정황’인지에 관하여는, 법관들이 늘 말하듯이 ‘편견을 버리고 평균인의 사고 수준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쉽게 답이 나올 만한 문제이므로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판사의 재판 스타일을 파악하여 공소유지를 위한 참고자료를 만든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검찰의 책임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 한 마디 없이 당당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까지 제한-침해할 수 있는 강력한 강제수사권을 가진, 그것도 그 정점에 있는 국가 수사기관의 행위를, 로펌의 변호사나 스포츠팀 감독과 같은 개인의 행위와 동일시하여 비교합니다. 너무나 옹색합니다.

위 논란에 관련된 기관이 삼권분립의 한 축을 이루는 사법부와 법무부의 외청 중 하나인 검찰이라는 점에서 아래의 가상 상황도 급이 많이 차이가 나는 비교라고 할 수 있지만, 그나마 좀 비슷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경찰청 범죄정보과(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과 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청 부서)가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검사들에 대하여 평소 성향, 수사지휘 방식, 세평은 물론 가족이나 지인 관계, 취미, 학생운동 참여 경력 등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들을 수집하여 파일로 만든 다음

이를 경찰청장에게 보고하고, 경찰청장은 이를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대검 반부패수사부와 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청 부서)에 넘겼는데, 그러한 사실이 외부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그 내용에는 ‘소신이 없다’, ‘여론을 많이 의식한다’, ‘존재감이 없다’, ‘폭음 후 다음날 지각하여 영장집행에 참석하지 못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합리적이다’, ‘딸만 셋이다’, ‘OO지방경찰청 제2부장이 처남이다’, ‘주말마다 골프를 열심히 친다’ 등의

모욕적, 명예훼손적인 내용들과 그 필요성을 의심케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까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청장이 ‘해당 검사의 수사지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만든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이는 단지 해당 법관 개인이나 재판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기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그러한 사안입니다.

사법부․법관․재판의 독립, 사법행정의 민주화․투명화, 법관의 정당한 권익 보호 등 법원과 법관에 관한 각종 현안을,

공개된 장에서 폭넓게 논의하고 그 의견을 모아 공표하며 이를 실천․점검하는 것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할 일 아닌지요.

그래서 이번 사안은 더욱 해당 법관 개인이나 재판부가 아닌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하여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중요 사건을 직접 심리 중인 재판부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 경우 나중에 판결의 결과에 따라서는 여러 법관들이 우려하듯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 단계에서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등 공식 사법행정 라인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동안 외부에서 법관 개인이나 재판부에게 가해진 유․무형의 부당한 압박에 대하여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가 나서서 항변해 준 적이 있던가요.

어쩌면 이번에도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는 ‘괜히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넘어갔으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 법관들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제기해야지 누가 제기합니까.

법관은 판결로 말해야 하고 공정성에 의심을 받을 행동을 절대 해서는 안 되니 신중하게 있자구요?

그러다 참다 못한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문제를 해결해주면 그때 가서 과실만 받아먹자구요?

그러는 동안 국민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된 수많은 재심사건 거리를 만들어 놓고서도,

사과 한 마디 없이 ‘그땐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다’면서 정의와 공정의 표상처럼 근엄하게 행동하던 것,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온 모습 아닌지요.

법관은 판결을 통해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기관이니 안건으로도 삼지 말아야 한다구요?

앞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뒷부분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ㅡㅡㅡㅡ

구체적으로 들어가 살펴봅시다. 우리가 지금 문제된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사유가 정당하다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법관을 사찰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고, 이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니 전국 법관의 대표자들의 회의에서 논의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원과 법관의 공정성을 그렇게 의심받는 행위가 되나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판사님들의 뜻이 무엇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법관 대표님들에게 사안의 본질을 보는 혜안을 기대합니다.

행위에는 작위뿐만 아니라 부작위도 포함되듯이 때로는 침묵이 강력한 동의의 의사표시가 될 수 있고, 기계적 중립이 오히려 지극히 편파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누구를 편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법관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자는 것입니다.

저도 현재 행정사건을 담당하고 있지만, 행정사건에서의 집행정지는 집행정지신청 자체에 의하여 신청인의 본안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경우가 아닌 한 ‘원상회복이나 금전배상이 불가능한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본안판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경우’라면 인용해주는 것이 원칙이고,

실제로도 이와 같이 운영되어 인용률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이를 담당해 본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이번 집행정지사건도 그 결정 이유를 살펴보니 이러한 원칙에 지극히 충실한 결정이더군요.

그런데 유력한 어느 일간신문의 사설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법원도 확인한 윤 쫓아내기 위법성’이라는 제목 아래 ‘적법절차 원칙 준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됨을 분명히 한 것’, ‘사실상 문총장에 대한 징계청구도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이를 읽는 많은 독자들은 ‘법관사찰 의혹을 포함한 검찰의 행위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법원이 집행정지를 통해 확인해주었다’는 취지로 이해하겠지요.

게다가 집행정지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대검은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를 집행한 감찰부에 대하여 ‘상부 보고 해태’를 이유로 전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네요.

무엇 때문에 그것이 그리도 급한가요. 우선 순위가 바뀌어도 너무 바뀐 거 아닌지요.

왠지 지난 독재정권․권위주의정권 시절의 기시감이 드는 것은 저의 지나친 망상일까요.

긴즈버그 대법관은 ‘법관은 그날그날의 날씨를 고려해서는 안 되고 그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이 짜놓은 프레임에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무엇이 지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시대정신인지’를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형식적인 균형이 아닌 실질적으로 균형감을 갖춘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법관들이 평소에는 그저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다가도,

막상 특정 사건을 담당하게 되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해관계, 급조된 여론 등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것은 이번 집행정지 사건의 결정으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일반적인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게 법관사찰 의혹과 관련하여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에 관한 침해 우려 표명 및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 촉구’라는 원칙적인 의견 표명을 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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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의 ‘폭풍’이라는 시로 마무리 합니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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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김성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게시글 전문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판사)

1. 들어가며
제가 토론방에 댓글 말고 본문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제되고 있는 판사 뒷조사 문건 관련 내용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립니다.

2. 먼저 옛날 이야기 하나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한비자 이병 편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송나라에 자한이라는 대신이 어느 날 군주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관직과 포상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니 임금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죽이고 형벌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니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군주는 꽤 좋은 생각인 듯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는 백성들 사이에서 어질다는 명성을 얻을 뿐,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질책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송나라 군주는 덕을 행하고 자한은 형을 행했습니다. 마침내 자한은 군주의 위엄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뒤, 송나라 군주는 자한에게 겁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3. 판사들은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적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논의의 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사법절차에 관하여는 아직 많은 오해가 쌓여 있습니다.

검사는 행정부에 속하고, 판사는 사법부에 속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아신 분들도 있고, ‘구형’과 ‘선고’를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도 많으며,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위한 ‘영장’은 헌법에 따라 법관이 발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또한 법원은 각 재판부별로 독립적으로 판결하고 3심제를 통하여 그 판단의 적절성을 확인해 가는 곳이지,

검찰 등 다른 국가기관들처럼 수장의 결단으로 의사결정이 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모르시거나, 믿지 않으시는 국민도 많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국민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형사사법절차의 큰 축을 차지하는 판사들이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을 위하여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다 보니,

언론에는 주로 수사기관의 시각에서 사안을 보는 보도가 나오게 되고,생업에 바쁜 국민들은 그런 보도를 보게 되면서 수사기관의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판사가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형사처벌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따르는 많은 법원칙들, 예컨대 죄형법정주의, 위법 수집증거 배제원칙 등은 일반인의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직관적으로는 ‘나쁜 사람은 하여간 처벌해야 하는데 판사들이 봐줬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인지도 확인되기 전에 ‘나쁜 사람’임을 전제로 처벌을 논하는 상황을 바라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위 법원칙들이 바로 ‘나쁜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임을, 그리고 형사사법절차는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를 이제는 판사들도 말하고,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4.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큽니다.

이에 관하여 논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에 해가 되지 않으며, 더 큰 공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뒷조사 문건에서 몇가지 문구를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 ‘물의야기법관 리스트포함’ 등이 눈이 뜨입니다.

일단 ‘물의야기법관 리스트포함’이라는 것은 문서 작성자가 어떤 경위로 알게 된 것인지 수사기록에서 불법적으로 온 것인지 여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에 적용된 판단기준을 그대로 하되 결론만 바뀌어 만약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로 기재되어 있으면,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에 적용된 판단기준을 그대로 하되 결론만 바뀌어 ‘검찰에 적대적이나’로 기재되어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증거법칙에 충실한 것이, 검찰의 증명책임을 높게 설정하는 것이 검찰에 적대적인 것은 아닐 것이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검찰이 스스로 재판장을 ‘검찰에 적대적’이라고 판단하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요? 작년에 모 사건에서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재판부에 대해 검찰이 취한 대응과 이후 ‘검찰·재판부 대충돌’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참고로 피고인도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대등한 당사자인데, ‘피고인·재판부 대충돌’이라는 기사가 나오지는 않고, ‘피의자·검찰 대충돌’이라는 기사는 더더욱 나오지 않습니다.

1회성이니까 또는 내용 자체가 별거 아니라는 입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건을 보면 그 자체로 문제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건 작성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과 확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위 문건과 비슷한 항목으로 이 법원 재판부 뒷조사, 내일은 역시 비슷한 항목으로 다른 법원 재판부 뒷조사, 모레는 항목을 확장하여 검찰에 적대적인지 여부를 확인해 나가면서 전국 검찰청이 형사 재판부 뒷조사를 하고 대검찰청이 이를 관리하게 되면, 어느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

위와 같이 공소유지와 관련 없는, 때로는 공개되지 않은 개인정보까지 수사기관이 수집하고 있으면 그러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피고인과 비교해 볼 때 당사자 대등의 원칙이 훼손됩니다.

나아가 이것이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되어 버리면 법관의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크게 훼손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미 판사 뒷조사 문건이 공개되었고,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데, 언제든지 뒷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판사들이 이에 관해 아무 문제를 삼지 않으면, 이후 피고인들이 과연 법원의 유죄 판결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에 반하여 현재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와 관련된 신청절차에서 해당 재판부가 독립하여 판단하였고 앞으로 관련 사건을 배당받을 해당 재판부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국민이 군주이며, 그 군주가 겁박받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경찰, 검찰, 법원으로 역할을 나누어 형사사법절차를 진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법원의 공정성, 중립성이 훼손되면 국민은 다시금 겁박받는 상태로 갈 것입니다.

이 문건에 대한 판사들의 사회적 논의 참여는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 및 국민의 인권 보장이라는 큰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마치며

판사나 검사나 모두 권력의 세계, 정치의 세계에서 법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검사가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과정에서 법의 지배를 약화시키면서 사실상의 권력, 위력, 여론전을 강화시키게 되면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법의 세계를 지켜야 하는 소명을 받은 자는 외롭게 판사만이 남게 되고, 판사들은 그 특성상 개별적으로 다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집단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의 인격과 헌신에 근거하여 법의 세계를 지켜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판사들은 법의 세계의 마지막 수호자로 부름받은 자이고, 법의 사제입니다.

판사들에게는 물리력도 여론형성력도 그 밖에 어떠한 형태의 무력도 없습니다.

판사들은 오로지 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문장으로 바꾸고 이를 선언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저는 재판진행과 판결문 작성을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그 숙명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도와 법률문화가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을 침해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토론방에도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 상황에 대하여 법관대표회의 또는 법원 행정처의 적절한 의견 표명, 검찰의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적 조치 및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