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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엿보기 세 토막■

■유관순 열사 순국 엿보기 세 토막■ 
 
●1)순국 100 주년 기념 4분 영상● 
 
"민족의 가슴에 묻힌 불꽃같은 삶, 유관순"
(국민은행 2020년 9월말 제작) 
 
https://youtu.be/QTc5zZwi3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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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관순(이화학당 학생), 이신애(대동단 단원) 열사 통해 본, 
 
짐승보다 못한 일제의 여성 독립투사 성고문 진상● 
 
'황소의 말린 생식기'를 고문 도구로 사용하는 잔학 범죄 
 
살아도 생식 능력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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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7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열사는 옥중에서도 만세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1920년 3월 1일에는 3.1 항쟁(운동이 웬말?)1주년을 기해 옥중에서 만세 항쟁을 주도했다  
 
유 열사는 이 일로 심한 고문을 당해 방광, 자궁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고,  
 
그해 9월 28일 8호 감방에서 순국 
 
이틀 뒤에야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미스 프라이 등이 
 
형무소장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하자, 
 
일제는 '시신 상태를 세상에 알리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석유상자에 넣은 시신을 넘겨줬다 
 
시신은 머리와 몸통, 사지 등 여섯 토막으로 잘려 있었고, 코와 귀도 잘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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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에 갇힌 여성 열사들은 성고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간수들이 말린 황소의 생식기를 고문 도구로 사용하다가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여성 열사들이 있으면 
 
이 도구를 사용해 성기를 훼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대동단 단원이었던 이신애 열사는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종로경찰서 미와 경사가 내 얼굴을 세게 내리치자  
 
아래턱이 퍽 소리와 함께 왼편으로 돌아가 붙어버렸다. 
 
아이쿠 하려 애를 써도 그때부터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열사는 옥중에서  3.1운동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전기고문을 받아 손목이 다 타버렸고,
끝내 임신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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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관순 열사 유언●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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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을 길이 없네요● 
 
게다가 시신마저 후대들이 지키지못해 가묘(초혼묘)상태입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매봉산 중턱 유관순열사 기념관 옆에 있으니 찾아가 보세요 
 
육각뿔 형태. https://bit.ly/3l2eaPg   
 
서울 망우리 공원 둘레길에도 유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가 있습니다.  
 
(과거 이태원 묘지의 유골을 대충 수습해 망우리 묘지에 합장함) 
 
후손들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