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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5가지 축, 한국의 디지털(소프트웨어)위기 등을 강의와 칼럼으로 전파합니다. Smart Work( 디지털 생산성 도구)로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자고 설파합니다.김일 4차혁명트렌드랩 소장 <강의 문의>010-5285-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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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민족항쟁'에 해당되는 글 2

  1. 2018.03.01 ■숫자로 본 3.1 민족항쟁■
  2. 2015.03.03 3.1만세운동을 '3.1민족항쟁'으로 바꿔 불러야
2018.03.01 19:58 집단지성

■숫자로 본 3.1 민족항쟁■

오늘 서울 서대문형무소라는 예상 밖 현장에서 3.1절 99주년 기념식이 열렸지요.(사진)

문 대통령 연설 등에 나타난 숫자로 본 3.1 항쟁입니다.

전국적 시위 인원은 약 200여만명(인구의 10%).

사망 7,509명,
부상 15,850명,
체포  45,306명,

헐리고 불탄 민가 715호, 교회 47곳, 학교 2곳.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비폭력 저항운동을 천명했음에도 비무장 시민에게 발포로 대응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3.1운동'이란 표현은 '3.1 민족항쟁'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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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국내에서만 1,542회의 만세 시위.

1937년 한 해 동안에만 국내에서, 3,600건의 무장 독립투쟁.

36년 일제 강점기 동안 해마다 2,600여 명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까지 10만여 명 가까이 이 곳에 수감.

(90%가 사상범이라고 불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수백 수천 명의 독립군이 매일 같이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넘.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 총독 사임 유발.

기만적이지만 '문화 통치'로 전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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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말■

"3.1 항쟁은 세계 언론에 보도되며 각국의 민족자결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중국 5.4운동, 대만 독립운동 등을 촉발시켰다"

당시 중국 언론 "무기를 갖지 않은 혁명이다. 그들은 혁명계에 신기원을 열었다"

인도의 민족 지도자 네루 " 1919년 3월 1일 한국의 젊은 남녀들은 독립의 꿈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 그 투쟁에서 학교를 갓 나온 소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장개석 총통 “중국 100만 대군이 못하는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능히 하니 장하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일본군 수뇌부 폭탄 처단 소식을 접하고)

3.1 항쟁 이후 일본 정가에선 조선에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려 할 때마다 "3.1운동을 잊었느냐?"란 소리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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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승부근성의 민족입니다.

■3.1 항쟁 정리자료■ (나무위키)

https://namu.wiki/w/3.1%20%EC%9A%B4%EB%8F%99 

<청년 역사단체 반크가 만든 3.1운동 유적지 지도>


[관련 글]

윤봉길 의사의 가슴 찡한 유서들



■승부근성 코리아!■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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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3 22:19 집단지성
96주년 3.1절을 지나며 제안합니다.

★ 무려 7,509명이 비무장 상태에서 잔인하게 학살(일제 집계)되고, 
15,961명이 부상당한 사태를 '3.1만세운동'으로 위축시켜 부르는 것은 
이제 시정되어야합니다.
 ★

★ '3.1 민족항쟁'이 마땅한 이름아닌가요? ★

3.1 항쟁은 국제적으로도 많은 민족 독립운동을 촉발시킨 세계사적 의미도
있지요.
이름 없는 민초들이 주체가 되었다는 점도 세계사적 의미가 있고요.

1919년 5월까지 지속된 1,542회의 시위에 참가자수 2백2만3천여명(인구는 1,678만명) ,체포 52,770명, 불탄 교회 47, 불탄 학교 2, 불탄 민가 715곳에 이릅니다.

감옥에 갇힌 5만여명은 고문과 성폭행 등 잔인한 가혹행위로 고통받았지요.

젊은 세대들에게도 전수해주어야할 수치들입니다.

오늘의 우리 삶이 조선시대 의병과 3.1운동 순국자 분들께 크게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폭력'을 천명했지만 학살로 돌아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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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항쟁은 체계적 저항도 유발시킵니다.

한달 뒤인 4월 11일. 민족 대표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 도의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고, 
이틀 뒤인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합니다.

 [부산의 태극기 할아버지가 3.1절날 부산에서 벌인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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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노래(정인보 작사/박태현 작곡)의 가사입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posted by 김일 해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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